네빌 체임벌린... 잡담

신흥정치가문의 당주

성공한 기업인

유능한 재무관료


대영제국의 총리로써는...?

"가서 탬버린이나 치세요."
(굽시니스트의 본격2차세계대전 만화에서...)

물론 당시 체임벌린 입장에서는 (재무장관 시절 영국의 경제상황을 그럭저럭 회복시키긴 했지만) 개판 5분 전인 영국의 상황에서 더 이상의 전쟁을 벌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당시 유럽 상황에서 힛통이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런 힛통의 요구를 어느정도 들어주면 그런대로 말이 통할 줄 알았지.


문제는 그 힛통이 상상을 초월하는 희대의 또라이였다는 것이다.


과거 보수 세력들이 민주당의 햇볕정책과 대북유화책을 비꼬면서 탬버린... 아니 체임벌린으로 빗댓는데, 어쨰 진짜 맞는것 같기도..?  -_-;; 

덧글

  • 心月 2013/06/25 13:06 # 답글

    '무정하고 잔인하기는 하지만,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다. 간단히 말해, 나는 확실히 신뢰를 쌓았다'

    힛통 만나보겠답시고, 몸소 바바리아까지 두세차례나 왕복한 행태가 국제호구 인증이죠.(피식)
  • StarSeeker 2013/06/25 13:25 #

    사실 체임벌린은 꽤 유능한 재무관료 였지요.

    그런대로 지표상의 영국 경제상황도 호전 시켰고, 당시에 힛통의 국제적 평가도 나쁘진 않았으니...

    오히려 히틀러 개새퀴를 외치는 처칠이 이상한 아저씨로 취급 받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결국 처칠은 대영제국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웅으로 체임벌린은 국제호구(.....) 그나마도 총리에서 퇴임하자마자 얼마 안 가서 급사했지요 (....)
  • 心月 2013/06/25 14:26 #

    뭐, '유화정책'이라면 체임벌린이 재무상시절 거국내각의 총리로 보좌한 맥도널드가 그 시초였고, 볼드윈이 기반을 세워 고스란히 인계받은 셈이었다고나 할 수 있겠죠. 제네바 군축회담에서 독불의 군사균형을 주창했음은 물론, 스트레자 전선도 단순히 립서비스에 준수할 의지나 노력도 없던데다, 영독해군협정 체결건마저 저 두 콤비의 작품이었으니깐요(...) 처칠류의 이단아를 제외하면 상류층-수뇌부내에선 친독주의가 득세하지, 경제적으로도 세계3위 무역대국인 독일과의 커넥션에 매달린 금융계의 사정상, 힛통을 달래줄 당면한 필요성이 시급하게 느껴졌을진 모르겠다만...;;
  • StarSeeker 2013/06/25 15:50 #

    아마도 임기도 좀 더 길게 가져가고 싶지 않았는가 봅니다.

    당시 체임벌린은 정말 잘 나가는 정치인이었고, 처칠과 친구들은 앞뒤 꽉 막힌 고집불통영감쟁이에 불과했으니...

    뭐 그래서 더욱 더 성과를 남겨야 하고, 어떻게든 전쟁을 피할수만 있다면, 임기는 보장되리라 봤겠지요. ㅎㅎ
    (처칠은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날뛸때 체임벌린은 대화로 풀수 있다고 생각하니 대중들에게도 좋았을테구요)

    문제는 호구의 생각이고, 애송이의 생각이었을 뿐이니...

  • 22nd 2013/06/25 13:11 # 답글

    그래도 영국은 뒤늦게나마 정신차리고 일치단결하기라도 했죠.

    우리에게 1940년의 영국같은 단결력이 남아있긴 한지 모르겠습니다.
  • StarSeeker 2013/06/25 13:36 #

    그때의 영길리는 참 대단했지요.

    영국왕실도 절대 항쟁을 주장하며, 조지6세 국왕폐하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후께서 버킹엄궁을 지키시고...

    따님이신 릴리벳도 전장을 누비셨지요

    거기에 처칠까지...

  • 위장효과 2013/06/25 16:56 # 답글

    상식적인 정치가가 상대였라면 체임벌린의 판단도 그닥 나쁘진 않았죠.

    문제는...그 콧수염 찐따가 일은 죽어도 안하는 천하 게으름뱅이에 이성적,논리적 판단대신 직관적 감정 따위에 더 좌우되는, 정말 희대의 개또라이싸이코라는거...
  • StarSeeker 2013/06/25 17:16 #

    네 전부 그 콧수염 찐따가 문제였지요.

    아무튼 이번 일도 거의 그렇다고 봅니다.

    이상적인면에서는 뭐 그렇게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했겠지만, 상대는 돼지 아빠였으니까요.

    아무튼 전 노완용이니, 매국노니 어쩌니 하는 것보다 어째 저 아재가 더 생각나더군요. (......)

    실제로 몇 년 전에 복거일이 한국의 체임벌린이라고 평을 하기도 했는데...
  • 心月 2013/06/25 17:19 #

    총통만 따먹지 않았더라면, 독일과 오스트리아외엔 바깥 세상에 나가본 일이 없었고(1차대전 서부전선 참전은 논외), 외국어는 전혀 구사할줄 몰랐으며, 미대도 실력이 따라주지 않아 떨어진 주제에 남탓하기 급급한 게으름뱅이 낙오자이자, 3류정치가밖에 더되겠습니까만은... 요상하게 적수들의 심리 파악과 권력의지, 대중선동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는 점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단 말이죠.
  • StarSeeker 2013/06/25 17:22 #

    심월님 : 그때는 이상하게 그런게 먹혀들어갔더란 말이죠.
    허긴 인생 낙오자들을 노리는게 바로 다단계와 사이비종교이긴 합니다만...(쿨럭)

    아무튼 당시 독일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를 대변해준다고 봅니다... OTL
  • 위장효과 2013/06/25 17:26 #

    starseeker// 그나마 체임벌린은 당시 자국의 현실이 어떻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화정책을 밀고 나갔다 라고 쉴드라도 쳐줄 수 있지만 지금 공개된 거 보면 이건 그렇게 쉴드도 못 칩니다.

    심월// 그렇게 집권하고 나서 다시 보헤미안 스타일로 돌아갔다는 게 독일 입장에서는 불행이라면 불행이죠. 그 덕에 전반적인 국가 운영이 아주 개판-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재건하고 한 거 보면 독일인들 능력도 대단하긴 한데 전체적인 방향 제시할 조타수가 놀고 있으니 기껏 재건한 군비도 뭔가 10% 부족하고 대외정책도 결과적으로는 그 뭔가 된듯하면서 부족한 군비가지고 전쟁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당시 경제하고도 맞물려서 말이죠. 밑의 행정은 그야말로 복마전이고.
  • 2013/06/25 17: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心月 2013/06/25 17:48 #

    위효//

    정부행정의 방임, 일례로 각료회의 소집을 중단한 것이나 중복기관 창설 따위가 나치당-관료기구내 내부투쟁을 고의적으로 조장시켜 권력 분산화를 막으려는 책략의 일환이었다는 관측들이 우세하니 망정이죠. 오페라 관람 도중에 경제부장관을 임명한 것도 그렇고, 헌정 절차나 규칙따윈 처음부터 지킬 의사야 없었거니와, 깡그리 무시한 채 제멋대로 즉흥적인 판단을 남발하기 일쑤였으니... 같은 절대독재자라도, 오하려 강철 대원수께선 대량학살부터 나사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을 직접 감독해가며 점검하는 꼼꼼한 스타일이었는데 말입니다.ㅋ
  • 위장효과 2013/06/25 18:03 #

    심월님//맞습니다. 그걸 잘 정리한 게 바로 리처드 오버리...책이 두꺼워서 그렇지 정말 제대로 비교해놨더군요.

    나치시대 일상사 연구의 시작을 알렸던 브로샤트의 책을 읽고 나니까 "도대체 이딴 찐따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라간거야???"하게 됐습니다. 물론 바로 그 찐따의 측근이자 장관이었던 모 인사의 "역사상 가장 긴 자기변명서"라 불리는 자서전 초반부 보니까 당시 독일인들이 그 찐따와 똘만이들에게 빠질 만큼 사정이 시궁창이었고 그 상황에서 그 찐따가 정말 구세주처럼 보일만 하긴 했지만요. 그렇긴 해도 슈페어가 나중에 슈판다우 형무소에서 회고해보니 그렇게 판단하고 마치 그 당시 자기가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뻥카 친건지 아님 정말 그 당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그 "연설능력"에서도 히틀러는 뭔가 부족한 점이 많았죠. 그에 비하면 무 대리가 훨씬 더 능수능란한 연설가였고.

    행정적 능력이나 정부장악력같은 걸로 치자면 제일 뛰어난 게 역시 강철의 대원수였고 그에 반해 연설능력이나 본인이 직접 나서서 각종 쇼하는 것은 역시 무대리가 달인이었는데 비해 힛통 본인은 어느쪽으로든 뭔가 부족한 편...그런데 거기 미쳐날뛴게 1920년대 독일인...
  • 2013/06/25 17: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26 13: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행인1 2013/06/25 19:05 # 답글

    1. 체임벌린과 달라디에(동시기 프랑스 수상)의 경우 '시간벌기'용으로 유화정책을 택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그러니까 전쟁은 피할 수 없으니 전쟁준비할 시간을 벌자) 체임벌린의 경우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에 죽어버려서 미국의 후버(죽을때까지 FBI국장하던 양반 말고 루즈벨트 전임자)처럼 열심히 자기변명할 여지가 없었던 것도 한 몫합니다.

    2. 그나저나 전 '유화정책' 이야기를 들으면 왜 다들 당시의 영국이나 프랑스를 우리한테 대입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처지는 암만봐도 당시의 폴란드(영,불과 독일 사이를 오가는 우왕좌왕의 실사례), 체코슬로바키아(여기가 정말 불쌍함), 오스트리아(반쯤 독재를 펴고 있던 슈슈닉 내각이 무력하게 독일에 항복), 알바니아(이탈리아에 강제 합병) 중에서 하나 찾아야할듯 한데...
  • StarSeeker 2013/06/26 13:19 #

    1. 기록도 제대로 남가지 못했고, 처칠 양반이 대영제국의 승리를 이끌어냈기 때문에, 더욱 더 설 자리가 없다고 봅니다.

    진짜 재평가 받은게, "신흥정치가문의 당주, 유능한 재무관료"정도 였을 뿐이죠.

    총리시절은 "어느정도 정상인을 상대로 했으면 그럴듯했을것이다." 라는것 정도???

    2. 에이... 그래도 폴란드 수준까지는 되리라 봅니다.

    체코나 오스트리아, 알바니아,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왕국처럼 힘도 제대로 못 써보고 발린 애들보단 그래도 힘이 있는 상황이지요.
  • 행인1 2013/06/26 18:56 #

    1. 체코슬로바키아는 어느 정도 능력이 잇었지만 영국이 사실상 포기를 넘어서 독일에 던져준 수준이고(수테텐 지방을 넘겨주라고 거의 강요) 오스트리아는 합방 몇년전부터 나치당이 활개를 치고 다닐 지경이었죠.

    2. 폴란드는 말씀하신 것처럼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알바니아 보다는 덩치가 있었지만 독일이나 소련에 비하면 약소국이나 다름없었죠. 폴란드 정부와 군부도 이 사실을 절감했는지 1940년 중반을 목표로 군비강화 계획을 세우고, 영-불이 독일의 라인란트 점령을 묵인하는 걸 보고나서는 독일이랑 불가침 조약도 맺고 나름 노력했지만 결과물은...;;;
  • 메이즈 2013/06/26 02:26 # 답글

    1. 개인적으로는 체임벌린이 독일 사회를 너무 상식적으로 본 게 오판이 아니었나 싶은데 말이죠. 사실 히틀러의 사고방식 정도는 영국 정도 국가라면 충분히 파악 가능했겠지만 당시 독일 사회 구조를 보면 히틀러에게만 권력이 집중된 것은 아니었고 그 아래로는 꽤나 유능하고 머리 쓰는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설마 히틀러가 돌아이라도 독일 자체가 돌아이화되진 않겠지' 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설마' 가 현실이 되어 체임벌린은 사상 최악의 오판을 한 것으로 찍혀 버렸습니다만 당시 상황을 기준으로 보면 꼭 틀린 생각이라고만 하긴 어렵습니다.

    2.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 김정일을 왜 그렇게 유화적으로 대했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김대중 같은 경우에는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단 유화책을 통해 상대의 입장을 확인이라도 해 보자는 의도가 강했습니다만 그 결과는 2002년 말부터 시작된 새로운 핵위기로 이미 드러난 상태였으니까요(참고로 이건 부시 탓이 아닌게 북한은 처음부터 제네바 합의 자체를 지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 2013/06/26 13: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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